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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청소년 제주 4.3 평화통일캠프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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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노경 작성일17-11-26 21:22 조회1,9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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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청소년 제주 4.3 평화 통일 캠프를 다녀와서
목포정명여자중학교 1201 고노경
1.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아주 날씨가 맑았던 11월 1일 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새벽에 기차를 타고 광주 공항으로 갔다. 공항에서 선생님들이 미리 조를 짜 놓았었고, 나는 4조였는데 다행히 1학년 여자아이 2명 중 한명은 목포에서 왔던 아이였다. 우리는 처음으로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에 갔다. 구럼비 바위는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의 해안에만 있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길이 1.2㎞, 너비 150m에 이르는 용암너럭바위 이다. 바위가 여러 개 합쳐져 있는 것이 아니라 길이가 1.2km인 바위 하나라고 해서 정말 깜짝 놀랐다. 지금은 아주 일부분만 남아있다. 왜냐하면 그곳에 해군기지가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직접 가서 보았더니 경치가 정말 좋고 예뻤는데 그곳을 파괴 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제는 제주도를 더 아끼고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제주 4.3평화공원 및 기념관
  둘쨋날, 아침을 먹고 제주 4.3평화 기념관에 갔다. 제주 4.3평화 기념관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중 나는 3.3평 감옥에 35명을 수감했다는 내용이 가장 인상 깊었다. 3.3평에 사람을 35명 넣으면 앉지도 못하고 계속 서 있어야 하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같은 사람이 이런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끔찍했다. 4.3평화공원은 4.3사건으로 인한 제주도 민간인 학살과 처절한 삶을 기억하고 추념하며,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평화 인권기념공원이다. 제주 4.3평화공원 조성사업은 제주4.3사건에 대한 공동체적 보상의 하나로 이루어졌으며,  2008년 3월 28일 개관하게 되었다. 제주 4.3평화공원은 조용하고 슬픈 분위기였는데 까마귀가 아주 많아서 ‘까악 까악’ 우는 것이 우리와 함께 추념하는 것 같았다.

3. 섯알오름 학살 터, 알뜨르비행장, 백조일손지묘
  점심을 먹고 ‘섯알오름 학살 터’에 갔다. 섯알오름 학살 터에는 두 개의 깊은 구멍이 있다. 그중 큰 구멍에만 물이 고여 있다. 1950년 8월 20일[음력 7월 7일] 모슬경찰서에서 예비검속된 210여명을 새벽 2시와 새벽 5시경 두 차례에 걸쳐 총살했던 곳으로 당시 계엄군은 무력으로 막아 6년 동안 출입이 금지되었던 곳이다. 그때, 몇몇 사람들이 무언가 눈치 채고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그때 가지고 있었던 고무신 등 자신의 물건을 떨어뜨려 흔적을 남겼었다. 이곳에서 210여명이 암매장 되었다. 이때 돌아가신 사람들은 아무 죄도 없는데 끌려와 죽었다고 했는데 정말 불쌍하다. 처음 보았을 때는 경치가 예뻐서 이런 슬픈 일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슬픈 역사가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섯알오름 학살 터에 들렸다가 ‘알뜨르비행장’에 갔다. 알뜨르비행장 앞에는 ‘파랑새’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그것을 만든 최평곤 작가는 동학 농민군이 사용했던 죽창에서 영감을 얻은 대나무를 활용하여 '파랑새'라는 작품을 설치했다고 하였다. 9미터에 달하는 큰 작품이지만 따뜻한 메시지를 주고 있었다.
  파랑새 작품에서 멀지 않은 콘크리트로 제작된 격납고에는 철로 만든 제로센 전투기 작품이 있고 그 앞에는 옥정호 작가의 작품 무지개빛 '진지'가 설치되어 있다. 작가는 무지개 색으로 전투의지가 없음을 밝히면서 항복이 아닌 '평화의 제스처'를 표현했다고 하였다. 철로 만든 비행기에는 여러 알록달록한 끈들이 묶여있었는데 알록달록한데다가 무지개빛 진지까지 있어서 인지 멀리서 보니 정말 예뻤다. 
  백조일손지묘는 전쟁이 끝나고도 유족들이 유골을 수습하지 못하다 7년이 지난 1957년에야 현장을 찾았는데 서로 엉킨 유골을 구분할 수 없어서 함께 모아 묘를 만들어 그 억울한 죽음을 추모할 수 있도록 만든 곳이다. 이곳은 인근 대정과 한림의 주민 200여 명을 끌어다 놓고 학살을 벌인 장소이기도하다. 제주의 비극이자 우리 현대사의 상처를 담고 있는 현장인 이곳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제주도민들을 생각하니 슬펐다. 앞으로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아야하는데. 

4. 제주전쟁역사평화박물관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제주전쟁역사평화박물관에 갔다. 처음 입구에 들어갔더니 영상 하나를 틀어주었다. 영상은 이 평화박물관이 생기게 된 이야기부터 정말 땅에 사람을 버리는 장면들, 동굴에서 왜 곡괭이를 들고 땅을 미치도록 팠는지에 대한 그 이야기들이 나왔다. 이곳이 생기게 된 이유는 실제로 강제징용에 끌려갔다가 간신히 살아 돌아온 아버지의 이야기를 옆에서 아들이 생생히 듣고 땅굴에서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의 흔적을 하나하나 찾기 시작했다가 만들어 진 것 이였다. 박물관의 내부에는 땅굴에서 찾은 많은 유적지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그것들을 찾기 위해서 이 박물관을 만든 사람이 얼마나 고생을 하였는지 느껴졌다. 박물관 내부를 다 둘러본 후 바깥에 있는 가마오름 땅굴진지에 잠시 들렸다. 땅굴은 한번 들어가면 방향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게 되어있다. 저걸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까. 우리의 조상들이 이런 고통을 겪었다고 생각하니 슬퍼졌다. 안전상, 보존상, 규제상의 문제  때문에 그곳에 있는 모든 길을 둘러볼 수는 없었지만 잠깐 들어갔다 오는 것 만으로도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 공항을 가기 전 용두암에 잠시 들려 기념품과 초콜릿을 사서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에도 또 가고 싶을 만큼 재미있던 3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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